
▲조재환 운정아파트 회장.
지못미. 많이 알려져 유명(?)한 말이다. 어떤 뜻인지 설명할 필요 없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이처럼 언제부터인가 한국어가 짧아지고 있다. 여기서 열거하지 않아도 많은 말이 줄고 있는 지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줄임말이 아니다. 편리한 대로 말을 줄이다 보니 원래의 뜻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어 심각한 것이다.
요즘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방송마다 자막이 흘러넘친다.
그런데 줄임말이 늘다보니 방송 자막의 실수(?)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화면에서는 바른말을 하는데 자막은 오자(誤字)나 잘못된 줄임말 등 맞춤법에 맞지 않는 글이 보여져 실망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을 보다가 맞춤법이 틀린 자막을 보면 일순간 기분이 어그러진다. 즐거움의 흐름이 끊겨 꺼림칙하게 된다.
단순히 오자로 인한 단절로 그런 것이 아니다. 자막 오자가 예능이든 뉴스든 어떤 프로그램을 보면서 집중하는 몰입을 방해하기에 맥이 풀리는 것이다.
헝가리 출신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Csikzentmihalyi)는 시카고대학 등에서 40년 동안 재직한 교수로 '몰입(flow)'이론을 주창했다. 그는 ‘몰입이란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을 차단하고 원하는 어느 한 가지에 정신을 집중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자막에 오자가 나오면 '왜 자막 문자를 올바르게 쓰지 못하지?'라는 잡념이 생겨 다시 몰입하기 힘들게 된다. 자막 하나가 몰입을 방해하는 중대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오자는 아니나 오자처럼 분위기를 저해하는 일이 나와 논란이 됐다. 바로 ‘10.29 참사’에 대해 ‘참사·희생자’ 대신 ‘사고·사망자’라는 용어를 쓰라고 한 정부 지침 때문이다.
이에 “책임을 덮으려는 의도”라며 야권 및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반발했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에서는 “재난안전법에 있는 법률적 용어를 중립적으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여기서 참사와 사고 중 어느 표기법이 맞는지 옳고 그름을 가리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생명 156명이 숨졌다. 대비할 수 있는 사태를 방임한 국가는 이에 대해 진심의 눈물을 흘리며 사죄해도 모자라다.
그런데 그보다도 먼저 ‘참사·희생자’ 대신 ‘사고·사망자’로 쓰라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어이없다, 세계적인 슬픔에 대해서도 애절함이 없다. 책임 등에 대해서도 무심하다.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국민의 거센 반발에 다시금 참사·희생자로 번복했다. 하지만 황망한 대형참사를 단순 사고로 치부하려 한 어리석음에 기가 막힌다.
MBC에서 해당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우려해 ‘이태원 참사’가 아닌 ‘10.29 참사’를 쓰기로 한 결정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래도 정부에서 할 일을 국민이 대신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자막 오자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잘못’은 단순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해당 프로그램에 몰입하던 분위기가 끊겨 아예 그 방송을 꺼버릴 수 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책임’을 다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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