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복붙'이 기사?…사실상 '기자'가 없다
최정석 기자
standard@gsdaily.co.kr | 2025-09-09 19:27:17
기사는 취재로 이뤄지는 것이 정상...현실은 취재 없는 기사만
기사의 질 곤두박질..."기자가 취재 않고 대체 무엇하나" 지적
"시청은 취재 현장인가 장터인가"'어쩌다 이 지경까지..."
취재 현장이 일부 기자들의 '막무가내식 취재' 행태로 정도를 잃었다는 탄식이 나온다. 기자 직함을 내세우면서도 취재는 뒷전이고 사실상 '강요'로 광고영업에 치중하기 일쑤다. 심지어 기자회견장을 개인 민원창구로 이용하는 일도 벌어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지자체 시청은 ‘취재 현장’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힌 장터보다 더한 이른바 '밥그릇싸움'이 치열한 이전투구의 현장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이에 지역 언론계의 민낯에 대해 두 차례 시리즈 보도를 통해 언론과 기자의 정도(正道)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한 지자체 시청 기자실에서 최근 벌어진 한 장면은 오늘날 지역 언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전 0시 축제’ 관련 브리핑 도중, 한 기자가 “내 유튜브 촬영에 시청이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의 비정상적인 태도에 다른 기자들이 술렁였다. 그 후 기자실에는 “저런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부끄럽다”는 자조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시민들이 기대하는 진지한 질문은 실종된 채, 기자 개인 민원의 장으로 전락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현재 대전시청에 등록된 기자 수는 240명으로 등록 매체 수도 180곳이나 된다. 6대 광역시임에도 인구 수 144만 명인 도시 규모로 볼 땐 과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대전시청 출입기자는 대전시에 언론매체 본사나 지역본부를 둔 매체가 기본이나 충남이나 충북, 멀게는 경기도 지역매체에서도 대전시청을 출입한다. 거의 전국구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다.
이들 중 상당 수는 '1인 미디어' 혹은 소수가 운영하는 신규 매체인데 인터넷 매체가 많다. 디지털 시대의 불가피한 추세로 보기엔 너무 난립한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전문적인 언론 교육을 받고 치열한 언론고시를 통해 기자가 된 정규 기자보다 어떻게 하다보니 기자가 된 경우도 비정규 기자도 적지 않다는 현실이다.
물론 '기사를 쓰면 다같은 기자지 무슨 정규, 비정규로 구분하냐'고 항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취재를 통한 기사 작성보다 시나 산하단체 등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쓰는, 심한 경우 복사 후 붙여넣기(복붙)로 자신의 매체에 등록한다. 뉴스밸류를 체크해 중요기사는 메인 보도 등 기사의 경중을 판단해야 하는데 이들은 자료 중요도가 크든 작든 관계치 않는다. 기사 수만 많이 올려 자신의 기자명이 많이 노출되도록 복붙에 열중하다보니 원본의 오타까지도 그대로 옮겨서 기사화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어처구니가 없다.
실제 '복붙'하는데 걸리적 거린다며 시 대변인실에 약물 표기 삭제를 끈질기게 요구해 결국 시 대변인실은 마지못해 약물 표기를 삭제하기도 했다. 이보다 심각한 경우는 어떤 기자는 아예 관계 기관에 기사(보도자료) 게재 권한을 줄 테니 '알아서 우리 매체에 올려라'라고 대신 기사등록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기자들의 일방적 행태가 더욱 심각한 양상이다. 최근 이장우 대전시장의 ‘대전 0시 축제’ 브리핑 현장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는데, 한 기자가 시장에게 자신의 유튜브 촬영 협조를 요구하며 따져 물은 것이다. 브리핑과는 전혀 무관한 질문에 브리핑 룸에 있던 다른 기자들은 한숨을 내쉬고 일부는 아예 나가버렸다. “기자라는 저런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부끄럽다”는 조롱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공직자와의 차담회 자리도 다르지 않다. 기자들이 촬영 장비 설치로 자리다툼하는 모습에 '좋은 취재를 위해 그런가'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정작 간담회가 시작되니 현안 등 제대로 된 질문은 없었다. 그저 배포된 보도자료만 받고 그대로 복사해 기사로 내보내는 정도였다. 열띤 취재가 없으니 보도 기사 품질이 엉성한 건 당연한 일이다.
취재(取材)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재료를 취한다는 의미다. 이런저런 재료(기사정보)를 찾아 종합해서 작성하는 것이 취재 기사다. 비유하면 많은 식재료를 넣은 음식이 맛이 좋듯이 많은 재료를 찾아 작성한 기사는 풍성해지고 이해도 쉽게 된다. 그런데 취재 없이 보도자료만 그대로 옮겨 쓰는 기사는 된장 없는 된장찌개, 고기없는 스테이크와 같다. 이런 지적을 하면서도 스스로도 부끄러워 더 열거하기 싫을 정도로 기사의 질이 곤두박질한 상황이다.
기자의 본분인 취재도 하지 않고 기사만 복붙한다면 시간이 남아돌 수밖에 없다. 취재를 하려면 현장에 다니면서 수많은 재료를 취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를 정도다. 그렇다면 취재 않는 그들은 그 시간에 과연 무엇을 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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