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다시 또 외치는 까닭
최청암 칼럼니스트 칼럼니스트
cachoi@gsdaily.co.kr | 2025-06-30 12:01:43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인의 유명한 시다. 민중시, 저항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신을 숨기고 불의와 타협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못난 행동에 대한 깨우침이다.
자료에 의하면 신동엽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8·15해방과 6·25전쟁, 이승만 독재정권과 이에 항거한 4·19혁명, 박정희 군사정권과 10·26사태를 온몸으로 겪었으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온몸으로 시를 썼다.
그가 겪은 강렬한 체험이 저항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싯구로 태동됐을 것이다. 바로 ‘진달래 산천’에서 빨치산을 소재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담았고, ‘금강’에서 갑오농민전쟁을 장편 서사로 그려냈다.
특히 ‘껍데기는 가라’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통해 민중과 민족이 주체가 되는 세상 그래서 거짓과 위선이 사라지고 공존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소망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시는 남았다.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는 4·19 정신처럼 불의에 맞서 정의와 민주를 외치는 함성이다.
우리는 껍데기가 아닌 본질을 찾아 나가야 한다. 껍데기에 둘러쌓인 반민주, 반민족, 반생명을 거부하고 민족의 일치와 화해, 평화와 공존, 통일의 희망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위대하고 소중한 사명을 온전히 이행하기 위해서 올바른 언론, 공정(公正) 언론이 필요하다.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동안 나라와 민족을 오도(誤導)하고 껍데기에 안주하게 한 권력형 언론을 타파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지방자치시대를 악용해 지방여론을 호도(糊塗)하는 껍데기뿐인 일부 지역언론 역시 환골탈태로 거듭나야 한다.
중앙언론사 기자 경험에 비춰보면 지역언론은 주체가 없다. 기자라면 펜과 수첩(지금은 노트북)을 들고 현장에 나가야 한다. 직접 취재해 기사를 작성하고 보도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뉴스고 팩트 체크가 가능한 뉴스다. 이를 기반으로 칼럼과 논평, 인터뷰 그리고 기획 기사도 가능하다.
그런데 전에 없던 '보도자료'가 등장해 현장을 삼켜 버렸다. 보도자료를 참고해 유무선 보충취재나 자료 등을 통한 추가 취재를 해야 하는데 이를 자의반타의반이나 고의적으로 외면한다.
손품, 발품을 팔면서 현장에 다니기 보다 그저 인터넷에 의지한채 커피와 함께 카페에서 기사 작성이 이뤄진다. 이른바 컨트롤씨브이, 자료 복붙(복사+붙여넣기)이다.
이처럼 현장에 가지 않고, 취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뉴스 보도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시청 등 지자체 공보 담당자들은 이를 인정하고 우선한다는 것이다. 기사 갯수 때문이다.
현장에서 취재 보도하는 기사는 보도자료보다 많을 수 없다. 보도자료는 시 산하 부서에서 하루에도 수십개가 쏟아진다. 하지만 현장 취재는 주요 행사나 기획에 따른 현장 취재, 인터뷰, 분석기사 등 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복붙으로 마구 올리는 보도자료 기사에는 물량면에서 현저히 밀리게 된다. 이에 시정 보도에 따른 협찬이 중단되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불가피하게 보도자료 복붙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지역기자와 지자체가 불가분의 관계로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껍데기에 갇히게 되는 과정이다. 지역 기자의 이런 관행이나 습성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껍데기다.
일각에서는 그같은 껍데기 기자는 소수라고 항변할 지언정 이제는 진짜 대한민국이 시작된 시점이다.
지역언론은 지역 이익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있기에 공정·객관·책임·독립·자기개발의 핵심 가치를 실천해야 하며, 소통 및 감시 기능 강화를 통해 신뢰받는 언론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진정한 기자라면 결연히 껍데기를 벗어 버려야 한다. 다시 또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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